리 스트로벨은 예일대 출신 시카고 트리뷴이라는 신문사의 유능한 언론인이다. 예수님에 대해 알아가는 아내를 말리려 예수님에 대해 객관적 사실을 찾아 나서다 역사적 사실로 증명되는 신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신화가 아닌가?
알렉산더 대왕이 전기는 그가 죽은지 무려 400년 이상 지난 후에야 처음 쓰여졌으며 이는 지금의 역사가들이 신뢰할 만하다고 여기고 있다. 그리고 그 후에 알렉산더 대왕에 관한 전설적 이야기들이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발전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처음 500년동안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가 손상되지 않은 채로 보존 되었고 그 후 500년이 지나면서 전설적인 내용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야기는 예수님이 죽으신지 길게보아야 30~60년 이내 쓰여졌다고 한다. 초기 기록된 연대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사도행전은 바울이 감옥에서 죽기 전에 쓰여졌으므로 A.D. 62년보다 이전에 쓰여졌으며 이 사도행전의 전편인 누가복음은 사도행전보다 먼저 기록되었으니 아마도 50년대 말기 A.D. 60년 경에 기록되었다고 추정되고 있다. 이는 예수가 처형당한 사건과 기록 연대가 최대 30년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신약의 복음서들보다 먼저 기록된 바울의 서신서들 중 고린도 전서 15장이 쓰여진 연대를 살펴보면, 예수님의 죽음이 A.D. 30년경이였다면 바울의 회심은 32년쯤. 바울은 회심 후 다메섹으로 인도되는데, 거기서 아나니아와 다른 제자들과 만난다. 그리고 A.D.35년경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만난다. 그 무렵 바울은 초대교회에 확립된 교리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럼 기독교 부활신앙은 예수가 죽은지 2~5년사이에 만들어졌다는 것.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이는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고전15:3-7, 개역한글)
제자들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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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들이 기록된 방식은 기타 고대문서들과 다르다. 정확한 세부사실, 세심한 주의와 정확성에서 고대의 다른 기록에서 많이 보이는 이상한 미사여구와 노골적인 신화적 요소는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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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고린도전서7장에는 주께로 직접 말씀을 받은 때와 역사적 예수이 말을 인용하는 때를 명백히 구분하고 있으며 14장에서는 참된 예언과 거짓 예언을 구분해야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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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의 공동체는 내용을 전달받은 세 번째 사람이 처음 그 내용을 전해 준 첫 번째 사람에게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제가 내용을 올바로 이해했습니까?'라고 물어 그가 잘못되었다고 하면 내용을 고치는 견제와 균형을 아루며 전달한 내용을 지속적으로 감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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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가 너무나도 일관적이었다면 그 자체로 독립적 증거가 될 수 없다. 거짓으로 입을 맞춰 쓴 이야기는 완전한 일관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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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제자들은 설명하기 불편하거나 어려운 내용까지 모두 기록해 놓았다. 막1.32 자기가 다시 오는 날이나 시간을 모른다고 한 것/ 막6.5 나사렛 지방에서는 사람들이 거의 믿지 않았다고 한 것./제자들이 예수를 오해하는 일을 반복하며 자주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행동을 보였던 것./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친 것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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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반대 세력들의 글 예수가 이스라엘을 잘못 인도하여 타락시킨 마술사라고 기록됨. 이는 예수가 기적을 행했다는 복음서의 기록을 사시실이라고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
신약성경이 원본이 없는 사본의 사본이라면 오랜 세월이 지나며 훼손된게 아닌가?
(서로 일치하는 사본이 많은가? 그리고 그것들이 서로 다른 지리적 장소에서 발견된는가?
또한 원본과 현존하는 사본 사이에 얼마나 시간 간극이 있는가? 로 고문서의 신뢰성을 판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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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116년경 [로마제국의 역사]를 쓴 로마으 역사가 타키수트늬 책은 A.D. 850년경에 복사된 사본 하나밖에 없다고 한다. 또한 1세기의 역사가 요세푸스가 쓴 [유대힌의 전쟁]은 아홉개의 사본이 있지만 4세기, 10세기, 11세기, 12세기에 복사되었다고 한다. 사본이 성경 다음으로 많은 것은 B.C. 800년경에 쓰여진 호머의 일리야드. 사본이 650개에 가량이고 A.D. 2세기와 3세기에 복사된 것이니 천년가량의 시간이 흐른 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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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6세기에 살았던 부처의 경전은 기독교 시대가 지난 후에야 기록되었고, 최초의 부처의 전기는 A.D. 1세기에 기록됨. A.D. 570년경부터 632년까지 살았던 모하메드의 전기는 그가 죽고난 후 1세기가 완전히 지난 767년에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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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신약은 5000개 이상의 사본 목록이 있음. 체스터 베티성경 파피루스 사본중 1번은 3세기경, 2번은 200년경, 3번은 3세기쯤 독사되었다고 한다. 가장 초기의 사본은 소아시아 에베소에서 멀리 떨어진 나일강변에서 발견된 파피루스로 요한복음 18장부터의 사본으로 A.D. 100년에서 150면 사이의 사본이라고 한다.
여기까지의 내용이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놀라웠던 부분이다. 단지 복음서가 역사적, 고고학적으로 굉장히 신뢰도가 높다는 사실. 그간 내 믿음의 뿌리가 편항되어 있었다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성경이 유일한 진리라고 믿으면서도, 초기에 가졌던 의문과 불신-일부 사람이 꾸며쓴 이야기 아니야? 이천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생겨났겠어? 병든자가 낫고 기적이 일어나다니 사실일수가 없잖아..! 라는-과 직면하지 않게 그저 덮어놓고 믿었었다. 그러니 더 자신있게 예수님을 소개할 수 없었던 것같다. 막연한 믿음의 범위였던 에수님의 기적과 부활, 창조주가 인간의 몸을 입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이땅을 거닐었던 것을 믿는 믿음이 이제 명명백백히 확인한 증거들위에 자리하게 된 것 같아 감사하다.
나의 생각 I
A.D.115년에 쓰여진 타키투스의 글에는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다고 한다.
네로는 죄인들을 묶어 두고 혐오스러운 행위 때문에 미움을 받는 무리들 즉 대중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격렬한 고문을 가했다 그리스도는-그리스도인이란 명칭이 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것인데-티베리우스의 통치기간에 로마의 행정관이었던 본디오 빌라도의 손에 극단적인 형벌을 받았다. 그리고 매우 해로운 미신으로 간주되던 신앙이 당장에는 방해를 받았지만 그 악기 발생한 최초의 장소인 유대 지방에서 다시 일어났고, 심지어 로마에서도 생겨났다. ...그래서 유죄를 인정한 모든 사람들에 대해 최초로 세포가 행해졌다. 그때 그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엄청난 사람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도시 방화죄 때문이 아니라 인류에 대한 증오 때문이었다.
이와같이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증거하기위해 핍박과 조롱 매맞음을 무릅쓰고, 뿐만아니라 기꺼이 목숨을 버렸다. 놀라운 점은 예수의 역사적 증명에 이 수많은 증인을의 죽음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믿고 따랐던 지도자가 저주받은 끔찍한 형벌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면 당연한 수순은 그 추종자들은 없어져야 맞는 것이다. 하지만 죽음 직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일어났으며 모든 계층의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고 국가를 넘어 빠르게 확산되었다는 것. 아무 이익도 없는 오히려 매질과 형벌만 있는 예수추종에 생명을 바친다는 것은 그들의 증언과 믿음이 사실에 기반한 진실한 사랑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이 숭고한 걸음이 후대에게 예수가 신화가 아니라 역사라고 증명할 수 있게 됨이라니.. 이땅에 있을 때는 예수님을 잘 이해하고 함께했던 제자들이 없었지만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이 이 수많은 증인을을 볼 때 멋진 동역자라고 참 든든하고 기쁘지 않으셨을까? 정말 정말 멋지다..!
나의 생각 II
구약은 룻과 라합과 같은 이방여인이 있었지만 큰 줄기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의 하나님이다. 하지만 신약에서 예수님은 어부에게, 귀신들린 자에게, 천대받던 여인에게 나타서 제자로 부르시고,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로 그들이 이 복음의 증인되어 세기를 넘어 피어날 기독교의 출발으로 삼으셨다. 천국잔치에 초대해도 오지 않자 악한자나 선한자나 모두 오라 하신 것처럼 나같이 뿌리없는 사람도 불러주셨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의 하나님, 등불, 촛대, 지금 시방이 예배에! 라는 원장님의 말씀이,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의 중요성이 이제야 조금이나마 실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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